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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페달 없는 자전거를 위하여

by 낭만바보 2020. 4. 5.

* 아이고 사진 그냥 퍼왔어요. 특정상품 광고 아닙니다. 그래도 사진 도용 했으니 많이 팔렸으면 좋겠네요ㅠㅠ.

 

모스크바에서의 산책길엔, 종종 페달 없는 자전거를 마주치게 된다. 

아이들이 타고 노는것이 태반, 어른손에 들려 있는것이 약간 모자란 반 정도다. 위의 사진처럼, 거의 자전거 그대로의 모습이다.

손잡이도, 바퀴도, 프레임도 모두 같지만 자전거의 핵심, 페달과 체인만 존재하지 않는 모습이다. 

수이 어른 손에 들려 이동이 가능 한 만큼 보통의 어린이용 자전거 보다도 작다. 

주로 사용하는 나이대는 아마 3세에서 7세 정도.

미처 끌고 다니기에는 허리를 너무 굽혀야 하고, 들기에 별로 부담이 되지 않으니 아이가 타지 않을때는 부모의 손에 들려서 이동되는 경우가 많은것이리라.

앞으로 많이 쓸텐데, 원체 명칭도 애매하고, 글자수도 많으니 이것을 이제 B라고 칭하도록 하자.

(참고로 구글 추천 검색어는 페달 없는 유아용 자전거이다.)  

 

호기심은 많지만 생각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 함께 걷고 있는데, 나름 봄이라 그랬는지 어김없이 손에들린 페달없는 자전거와 마주쳤다.  러시아인답게(큰 사람이 많다는 편견을 가득 담아, 실제로 큰사람이 많잖은가....;;) 큰 키의 우람한 아저씨의 어깨 사이에 끼인 그 자전거가 그 친구의 눈높이에 딱 들어왔나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자주 보지 못했던 형태인(요즘의 어린아이들이 타고 노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미세먼지로 인해 밖에서 노는것 자체가 줄어 더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무페달 형식이 이제야 친구의 세계에 등장했으리라. 갸웃 갸웃 하더니 한 마디를 턱! 하고 던져버린다. 

 

"저런 쓸모 없는 것을 왜 타고 다니는 거야..."

 

 

안다. 나도 역학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효율이 원본보다 훨씬 뒤떨어 지는 형태라는 것은 잘 느껴졌다.

쓸모 없다는 말이 거슬렸던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존재가치를 가진것을 수이 무시한 때문 인지는 모르겠지만 슬몃 심사가 뒤틀렸다.

당장에 눈앞에서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논리적 반박을 할 수도 없고... 

<높은 자존심 만큼의 포용력(지적이든, 감정적이든, 무엇이든간에)이 없는이와의 소통은 늘 불화를 만든다. | Me |결국에 웃음으로 끝맺게 되는 엔딩이 있다 하더라도, 간만에 나온 봄나들이에 잠시의 소란도 일으키기는 싫었으니.>

그저 으음... 하고 걸어 갈 밖에...

덕분에 향기로운 봄산책을 마친 내게... 모욕당한 자전거에 대한 것인지, 그것을 생각해낸 이에 대한 것인지 알수없는 미안함이 남았을뿐.

 

여기에 그 순간 말못한, 미력한 사유서를 적어놓는다.

전공도 아니거니와, 실제로 그 자전거를 타본적도 없으며, 그만한 또래의 아이를 둔적도 없으니 이건 완전한 타자가 상상만으로 적어놓은 글일 뿐이고, 누구나 생각 해낼만한 이야기일 뿐일테니 굳이 바쁘신 분들이 읽을 가치가 있는것은 아닐테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으시는, 이놈이 이런 점은 쓰지 않았네... 이런점도 있어! 라는 깨우침과 , 실제로 경험 했을때는 이런 이런 점이 좋은 점이었다는 가르침을 받기위한 마중물 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글을 오래 안쓰니, 자기검열과 자기변명만 늘어난것 같다. 지울까...... 아냐 그래도 무서우니까 이만 줄이는 정도로......;; 

 

 

B는 서로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중간물이다. 

  아이는 자전거가 타고싶다.

  그 욕망은 어디에서 부터 오는가? 잘 모르겠다. 옆집 누나야(형아,언니,오빠)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았을때도,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선망) 생길 수도 있고, 그저 누군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결핍의 인식)부터 생길 수도 있고, 누가와 상관없이 그저 빠르다는 상태에 대한 선호 때문에도 생길 수 있고,  그냥 반짝반짝한 형태가 멋있어서 그런것일 수도 있다. 잘 몰라서 나열은 해도 분석은 못하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싶어지는 것은 일어남직한 사건이다.

 

 부모는 자전거를 타게 하고 싶지 않다. 

  성인이 된뒤에 자전거를 타다 꽤 큰 상처를 입은적이 있다. 그뒤로 어떻게 됬냐고?? 이미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 어무니는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내심 못마땅해하신다. 나이가 찬 아들이라도 어디가서 넘어지지나 않을까가 못내 걱정이신가 보다. 그럴만한 경험을 드렸기 때문이겠지만.....  이와 같을진데, 이 B를 이용하는 주 대상층인 3~6세인 아이의 경우에는 어떨까. 아직은 이르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 또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두사건은 동시에 일어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자전거 라는 대상체만을 두고 보았을때 위의 두 논의는 완전히 충돌하는 상태(자전거의 유/무)를 만들어내는데다 두개가 다 논리의 여지가 없는 마음의 문제이다. 

 충돌은 반드시 일어난다.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대한 과정의 차이는 있더라도.... 

 

 여기에서 B는 둘 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대상으로서 가치있게 떠오르는 것이다. 

 

 

 자전거는 왜 위험할까?? 아주 간략화 시키면 크게 두 요소일 것이다.

 1. 균형잡기가 어려워서, 2. 속도제어가 어려워서. 

 

 자전거는 두바퀴를 가지고 있고, 두바퀴는 점으로 바닥과 만난다. 이것은 하나의 선형 접촉을 만들어 내고 자전거의 차체는 그 두점을 이용해 그 부피를 지면 위에 세워야 한다. 아주 정교하게 컨트롤 하지 않으면 카드를 세로로 식탁위에 세울수가 없듯이, 자전거는 스스로 설수 없는 몸체를 가지고 있다. 멈춘 자전거를 타면 넘어진다. 달리는 자전거를 타도 잘 넘어진다. 처음엔!.  속도를 높이기가 힘들어서.

 자전거를 지면에 세워주는것은 두 바퀴가 회전할때 발생하는 회전관성. 그 회전관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지지력만큼의 힘이 자전거를 똑바로 서게 해주는 보존력으로 작용한다. 그 회전관성은 자전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커지고, 보존력도 속도가 빨라질수록 커진다. 자전거의 균형을 잡았다는 것은 일정정도 이상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속도가 충분치 못하거나, 균형을 못잡고 가한 힘이 보존력보다 강하게 되면 넘어진다. 쿵!!!! 

 

 운이 좋아 넘어지지 않는다면 이제 속도제어의 단계로 들어가게된다. 이제 걸을때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물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익혀야 한다. 피하고 틀고 정 위험하면 멈추고.  속도가 붙은상태에서 핸들을 조작하는 정도가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지 이론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경험적인 감을 완성 해야 한다. 속도가 느릴때는 걸을때의 속도에 맞춰서 생각한 예측이 잘 들어 맞지만 속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핸들조작은 어려워 지고, 핸들의 트는 각도에 따라서 체감적인 횡이동의 정도도 달라지게 된다. 갑작스레 속도가 평상시 속도 이상으로 올라가버리게 되면 이전까지 생각하던 정도의 감이 맞지 않는 놀라운 체감물리학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한 마디로 이해 안되는 돌발상황에 자주 마주치게되고 그 결과는 잦은 지면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자전거 이론정도는 가뿐한) 물리학도에게 자전거를 가르친적은 있었는데,, 뭐 이론과 경험적인 체험, 체감은 또 달라서 잦은 지면과의 밀당없이 그냥 한 번에 잘타게 되지는 않더라....  이게, 아이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감내해야 할 몸의 컨트롤 및 체험지식이라면 대다수의 부모들이 3~6세는 아직 이르다. 라고 생각 할 가능성이 많은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넘어지면서 배우면 된다 치더라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나기에도 소중하고 어린 내새끼 아닌가... 

 

 

이제 B를 보라. 

 우스꽝스럽게도 다리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불편한 자세이지만 두 발을 땅에 디딜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발을 땅에 디디고 서면 되니 균형을 잃을 일이 없다. 부모에게 안심을 주는 구조임에 분명하다. 그저 조금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다리를 벌려서 땅에 디디면 되는 형태인 것이다. 물론 그냥도 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의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고 넘어졌을때 자전거의 무게가 충격을 아프게 가중시킬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 자전거보다는 훨씬 신뢰되는 구조인 것이다. 

 

 속도면에서 바라보았을땐 어떤가? 처음에는 그저 바퀴있는 무언가를 깔고앉아 어기적 어기적 다닐테니 큰 위험성이 있진 않을테고, 조금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발을 개구리처럼 뒤쪽으로 구르며 밀면 빠르게 나간다는 것을 알수 있겠지만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할 것이다. 평지나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다리사이에 끼고 밀면서 가는것이 어디 쉽던가. 위험한건 작정하고 내리막길에서 발을 때고 속도에 몸을 맡길때 정도일텐데, 일반 자전거와는 다르게 주의를 줘야 하는 구간이 대폭 감소했으며(일반 자전거는 늘 속도가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컨트롤이 어린아이에게도 쉬운편인 브레이크(양발)가 있어 일반 자전거보다는 쉽게 컨트롤을 배울수 있으리라. 물론, 미리 내리막에서 주의를 주는 경우가 기본으로 상정 되어 있을테고 말이다. 

 

B는 부모가 보기에 훨씬 안전한 놀이기구 일 것이다.

그 안정성 때문에 자전거의 심장을 떼어내 버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이가 이 누군가는 기괴하다 생각하는 B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와는 상관없이.. 

 

또 의외로 아이가 바라보는 B에 대한 시선이 꼭 부정적이라는 법도 없다. 

왜냐하면 어쨋든 B는 자전거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이가 타고 싶어하는 것은 자전거일까??? 자전거일까??? 자전거 형태일까?? 

페달의 구동장치는 자전거의 이동수단적 가치의 효용성을 만들어 주는 장치라는 것은 우리 모두 인정하는 바이지만 아이는 그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하는 걸까???   아마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타고싶은 것의 세부사항을 완전히 고려하여서, 이건 기어가 12단 밖에 되지 않는 구형 모델이오니 최소 21단이상의 조작가능한 기어가 달린 자전거로 사달라고하는 나이의 아이에게 사주는 물건이 아닐테니까. 일단 자전거같은 B라는 존재 자체로 욕망이 만족될 가능성. 즉 속이는 느낌은 있지만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줄 수 있다. 

 

아이가 영리해서 B는 진짜 자전거에 달린게 없잖아!!! 라는것을 인지한 경우에는 무용지물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협상에 있어서 한쪽은 Yes, 한쪽은 No여서 대안 선택지가 없는경우에는 그저 감정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냥 안돼와 돼의 싸움이니 서로의 논리를 누군가 수긍해주지 않는 이상 이건 그냥 갈등이다. 하지만 여기 그 중간에서 물을 흐리는 대안책 B가 있으면 어떨까? 설득과 협상의 전략은 풍부해지게 된다. B가 자전거가 아닌걸 알정도로 영특한 아이이지만, 우리의 협상 상대는 아이이다. 

역시! 똑똑하고 대견한 내새끼!! 하면서 감동함과 동시에 이 영특한 친구에게 엄빠가 세상을 살아오며 경험한 실전세상살이 협상노하우를 하나 가르쳐줄 기회로 삼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자전거는, 이러이러해서 안되지만, 여기 자전거와 거의 비슷한 B가 있는데 이것을 고르는 것은 너에게 허용 해 줄수 있다. 이것도 자전거 못지 않게.... ~~ 로 시작하는 감언이설은 꽤 괜찮은 타협점을 서로에게 구성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뭐 역시 속이는 느낌이 없잖아 생길수야 있겠지만....;;;; 

대안의 가능성이라는 점만으로도 B가 존재해야하는 당위성은 충분하지 않나??  

개인적으론, 세상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갈등구조를 해결 할 대안을 이정도로 구현한 매개체를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았었다.

(천상의 발견이라 불리는 짬짜면도, 배부르다, 비싸다와 같은 단점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또한,  존재가 있게한 당위성이 아닌 존재 하고나서야 발생한 당위성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B는 생각외로 많은 적절성을 보여준다. 

1. 부모와 아이의 산책속도를 비슷하게 만들어준다. 

 보통 아이의 산책속도는 영아일때는 유모차에 타고 있어 같은 속도로 맞춰지지만 유아가 되면서 부터 크게 뒤쳐지게 된다. 타력으로 움직이는 걸음의 인큐베이터에서 갓 빠져나온 아이는 느리다. 작으니 다리도 짧고, 보폭도 짧고, 그렇다고 부모가 한걸음 걸을때 여러걸음 걸으면 산책이 거의 뛰기와 같이 되기 일쑤. 보통은 부모가 천천히 걷는것으로 맞춰줘야 한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간다음에도 부모걸음 맞추느라 종종걸음 걷고 질질 끌려가는 아이들을 쇼핑센터에서 흔히들 볼 수 있지 않은가. (질질 끌려가는 경우의 이유가 다른경우도 많지만.....;;;)

 다수의(라고 해도 열몇번 정도의 케이스지만) 경우를 관찰 했을때 신기하게도 이 B를 타고 가는 유아들은 부모님이 걷는속도를 크게 늦춘것도 아닌거 같은데 비슷한 속도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평지에서는 밀면서 나아가는게(활기찬동안에는) 실제 걷는 속도보다는 빠르게 이동하는 효과를 주로 보였고, 오르막인 경우는 부모가 자전거를 들고 움직여야 하니 큰 영향은 없다고 치더라도 그게 가속되는 방향으로 작용하진 않았으리라는 유추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리막에선, 내려서 걷는경우도 있지만 부모가 자전거를 꼭 잡고 걷는 행위를 하게 되니 자연스레 속도를 맞추게 되는 효과가 발생되는것 같았다. 물론 이 관찰은 가속이나 감속이 충분 할 만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에서 관찰한 결과는 없기에... 

해당 경우에 한해서는 주장이 억지일수 있다.(그런경우는 그냥 자전거를 들고들 가더라...;;) 

 

2. 의외로 재미가 있다. 

  타는 동안 웃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편견의 소산일 수 있겠다. 그냥 나온것 자체가 즐거웠을수도.)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은 이 기괴한 B를 타면서 즐거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나도 자전거를 타다가 특정 구간에선 페달을 밟는 대신 발로 툭툭 밀면서 자전거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을 즐겼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즐거움 또한 가능한 상태라고 느껴졌다. 페달을 밟아보면 자전거의 맛을 알게 되겠지만 아직 그런 경험도 없으니 오히려 더 신날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의지로 이어지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놀이를 통해 운동을 하게 만드는 효과 또한 불러 올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렸을적 할머니 댁을 가자!! 라는 말은 싫어했지만 차타러 가자!! 라는 이야기는 좋아했던 누군가의 동생을 떠올려 보면 놀이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산책의 증가 곧 운동의 증가로 이어지게 만드는 몹시도 긍정적인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3. 의외로 자전거 타기의 연습이 된다. 

  자전거 타기의 첫 균형잡기가 어려운 이유는 두 바퀴에 의지해 몸을 맡기는 행위 자체가 낯선 첫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발로 뜀뛰기를 해야하지만 두 바퀴로 나아가는 B는 생각해보면 처음 자전거타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처음 자전거를 탄뒤에 가장먼저 해보라고 하는 동작이다. 두 바퀴에 의지해서 마찰력을 회전으로 바꾸면서 나아가는 느낌이 어떤지 낮은 속도에서 체험해 보는 것이다. 

  동시에 균형을 잡아보기 위한 노력을 해보는것. 그것을 통해 이후 더 빠른 속도로 바꿀수 있는 경험의 단초를 쌓고(물론 고속으로 달릴때 배신당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점점 속도를 올려가면서 자신의 균형에 맞는 속도를 가지게 되었을때 자전거를 탈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움이 자연스러운 아주 어렸을때부터 B를 타고 다닌 사람은 아무래도 첫 시작이 경험이 없는 이보다 수월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있다. 

 

 재미있게, 자전거 타기의 연습을 해보면서, 부모님과 속도를 맞춰서 산책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물론 나에게도 척 보기에는 방식이 기괴한 B와의 날카로운 첫 만남이 있었다.  왜 인지 조소또한 머금어 지는.

 하지만 대다수 인간은 의외로 필요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름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을 하는동안 내가 배운것이 있다면, 반복되는 사건 반복되는 결과(존재)에는 반드시 복잡함을 관통하여 반복성을 만들어 내는 당위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내게 B를 반복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조소는 오히려 몰이해에서 부터 나오는 편견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짧게나마 반복성을 만드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것은 꽤 큰 변화를 남겼다. 

 

 누가 저런걸 만든거야? 깔깔깔 이라는 마음대신 오히려 감탄하는 마음이 생겼달까... 

 자전거가 먼저 만들어 진건지 B가 먼저 만들어 진건지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다. 더 유명해 진것은 자전거이니 후대에 B를 상품화 시킨 사람은 자전거를 기본으로 두고 B를 만들었으리라 단정해보자.

부모와 아이간의 갈등. 그것을 타협시킬수 있는 중간점으로써의 자전거를 상상한 사람.

과감하게 자전거의 정체성을 제거해버리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으로 둘간의 타협점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 한 사람. 

더이상 자전거가 아닌 B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효용성이 있을거라는것을 상상하고 물건으로 만들어낸 사람. 

그는 아마 갈등을 감싸안아내는 따듯한 마음과 실사구시의 실천력을 가진 사람일거란 상상을 하게 된다.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심장마저 도려내 버리는 과감함은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버리고 천동설을 주장하거나, 아인슈타인이 3개의 대원칙중에 과감하게 하나를 지워버리고 상대성이론을 만든것과 같은 번뜩임처럼 느껴졌다. 

 이 과한 감성의 파도속에서... 그냥 어쩌다 페달이 박살난 자전거가 생겨서 태워봤더니 쓸만한데?!?! 그래서, 상품화 시켜보았어요!!! 라고 이야기 하는 그림자가 언뜻 언뜻 스쳐지나갔지만...  뭐... 그냥 오늘은 갬성의 뽕맛에 취해 버리는걸로........;;

 누군가 엄청난 사람이 있어서 또 하나의 걸음을 해쳐나갔다고 믿는것이, 감성과 이성의 조오오화를 꿈꾸는 낭만쫓는 바보에게 더 긍정적이지 않겠나.....  믿음이라는게 뭐 늘 다그렇듯이... ㅎㅎㅎㅎㅎ 

 

 

 그러나....... 

 

 

 

 

 

 좋아하는 개그맨 상준님 사진으로 마무리 합니다. ㅎㅎ 이상준 짱!!!